◈ Wisdom, Liberating Technique and the Domain of the Bodhisattva ◈
(지혜와 방편 그리고 보살행이란?)
(유마경 중에서)
Q : What are the meaning of Wisdom, Liberating Technique and The Domain of The Bodhisattva?
지혜와 방편 그리고 보살의 행은 무슨 의미입니까?
A : Manjusri, thus should the sick bodhisattva consider things. His wisdom is the consideration of body, mind, and sickness as impermanent, miserable, empty, and selfless.
문수보살이여, 병에 결린 보살은 일체법에 대하여 반드시 다음과 같이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몸도 마음도 병도 모두가 덧없고 고통이며 공이며 무아라고 이해하는 그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Furthermore, his wisdom lies in understanding that body, mind, sickness are neither new nor old, both simultaneously and sequentially.
또 몸과 마음과 병 가운데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더 새롭다거나 더 낡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그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His liberating technique consists of not exhausting himself by trying to avoid all physical sickness, and of applying himself to accomplish the benefit of living beings, without interrupting the cycle of reincarnations.
몸에 지닌 병을 굳이 피하지 않고 세상에 태어나며 기꺼이 윤회 가운데 뛰어들어 중생들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그것이 바로 방편입니다.
And his liberating technique lies in not seeking cessation of body, mind, or sicknesses.
그리고 몸과 마음과 병이 생기는 것을 꺼리지 않고 적멸 가운데 안주하려 하지 않는 그것이 바로 방편입니다.
That, Manjusri, is the way a sick bodhisattva should concentrate his mind ; he should live neither in control of his mind, nor in indulgence of his mind. Why? To live by indulging the mind is proper for fools and to live in control of the mind is proper for the disciples. Therefore, the bodhisattva should live neither in control nor in indulgence of his mind. Not living in either of the two extremes is the domain of the bodhisattva.
문수보살이여, 병에 걸린 보살은 자신의 마음을 반드시 이와 같이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꿰뚫어 알아볼 것이 있다든가 없다든가 하는 데에 마음을 써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굳이 꿰뚫어 알아볼 것이 없는 데에 마음을 쓰면 그것은 곧 범부의 짓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굳이 꿰뚫어 알아볼 것이 있는 데에 마음을 쓰면 그것은 곧 성문의 짓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보살은 꿰뚫어 알아보려는 일에도 그렇지 않은 일에도 마음을 쓰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보살의 행입니다.
Not the domain of the ordinary individual and domain of the saint, such is the domain of the bodhisattva.
범부의 행도 아니고 성현의 행도 아닌 그것이 바로 보살의 행입니다.
The domain of the world yet not the domain of the passions, such is the domain of the bodhisattva.
열반에 이르렀지만 결코 완전한 열반에 들지 않는 그것이 바로 보살의 행입니다.
Where are understands liberation, yet does not final and complete liberation, there is the domain of the bodhisattva.
윤회를 거듭하면서도 정작 번뇌를 온전히 여읜 그것이 바로 보살의 행입니다.
Where the four Maras manifest, yet where all the works of Maras are transcended, there is the domain of the bodhisattva.
네가지 마[四魔]*를 가까이 하면서도 정작 모든 마의 영역을 초월하는 그것이 바로 보살의 행입니다.
Where one seeks the gnosis of omniscience, yet does not attain this gnosis at the wrong time, there is the domain of the bodhisattva.
일체지를 구하면서도 적절한 때가 아니면 억지로 구하지 않는 그것이 바로 보살의 행입니다.
Where one knows the four Holy Truths, yet does not realize those truths at the wrong time, there is the domain of the bodhisattva.
네가지 거룩한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얻으려 하면서도 적절한 때가 아니면 억지로 깨달으려 하지 않는 그것이 바로 보살의 행입니다.
A domain of introspective insight, wherein one does not arrest voluntary reincarnation in the world, such is the domain of the bodhisattva.
안으로 향한 바른 사유에 전념하는 가운데 자발적으로 굳이 윤회의 세계에 태어나는 그것이 바로 보살의 행입니다.
A domain where one realizes birthlessness, yet does not become destined for the ultimate, such is the domain of the bodhisattva.
무엇하나 생겨남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굳이 결정적인 깨달음을 선택하지 않는 그것이 바로 보살의 행입니다.
.終.
* 네가지 마[四魔] : 번뇌마(煩惱魔), 음마(陰魔), 사마(死魔), 천마(天魔)
※ 유마거사의 ‘지혜’와 ‘방편’ 그리고 ‘보살의 행’ :
► 유마힐경(維摩詰經THE VIMALAKIRTI NIRDESA SUTRA) 제5장 문수사리문질품(文殊師利問疾品 The Consolation of the Invalid)에서 유마힐 거사가 문수보살에게 설하신 법문 중 일부이다.
► 보살행을 구현하고자 하는 수행자들의 갈 길을 환히 밝혀주는 등불과 같은 감로의 법문이다.
► 유마경에 등장하는 유마힐거사와 문수보살은 붓다 자신의 화현으로서 모든 중생들에게 지혜와 방편과 보살행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 주시는 법문이다.
첨부파일 참고 바랍니다.
심월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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