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at Does The Word ‘Mahayana’ Mean? (마하야나大乘이란…) ◈
Q : What does the word ‘Mahayana’ mean? ‘마하야나’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A : The word ‘maha’ means ‘great’ and the word ‘yana’ means ‘vehicle’, or transportation. Generally, it is translated as the ‘Great Vehicle’. The word ‘Great’ has two meanings; first, all things are fundamentally the same and equal. Second, all things have a Buddha-nature that manifests the ultimate merits. On the other hand, the word ‘Vehicle’ is a means or a way transporting all things into the enlightened world. In other words, the vehicle equally treats and helps all things to achieve and manifest their Buddha-nature. ‘마하’ 라는 말은 위대하다는 뜻이고, ‘야나’라는 말은 탈 것, 또는 운송수단이라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큰 수레’라고 번역합니다. 위대하다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모든 존재들은 근본적으로 같고 동등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모든 존재들은 궁극의 공덕을 드러내는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 ‘탈 것’이라는 말은 모든 존재들을 깨달음의 세계로 운송하는 수단 또는 방법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탈 것은 모든 존재들을 동등하게 대하며 그들이 그들의 불성을 성취하고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Q : I understand all beings have Buddha-nature. Then, what does it mean by Buddha-nature that manifests the ultimate merits? 일체 존재들이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궁극의 공덕을 드러내는 불성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A : All beings consist of one whole universe. Each of them is like a part of one complicated web; all beings exist and work interdependently to form one whole universe like a huge web. Their interdependency itself is called Buddha-nature; their interdependent work is called merit. That is, Buddha-nature is the potential state of interdependency of all beings as a basic nature. Ultimate merit is the exposure of such interdependency of all beings as a phenomenon. 일체 존재들은 하나의 온전한 우주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존재들은 마치 하나의 복잡한 망의 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들은 거대한 망과도 같은 하나의 전체 우주를 구성하기 위해서 상호의존적으로 존재하고 작용합니다. 그들의 상호의존성 자체를 불성이라고 부르고 상호의존적 작용을 공덕이라고 부릅니다. 즉, 불성은 일체 존재들의 상호의존성이 본질적 속성으로 잠재된 상태입니다. 궁극의 공덕은 일체 존재들의 상호의존성이 현상으로 드러난 것을 말합니다.
Q : Then, could you explain how is the ‘Great Vehicle’ different from the ‘Small Vehicle’? 그러면, ‘큰 수레’가 ‘작은 수레’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A : I think there are two different ideas; first, the ‘Small Vehicle’ does not suppose a Buddha-nature even though it emphasizes all things are one and equal. Therefore, the highest level of enlightenment that practitioners can achieve in the ‘Small vehicle’ tradition is the stage of Arhat. Second, the ‘Small Vehicle’ does not focus on dynamics and changes of a means as a method achieving or manifesting Buddha-hood. 거기에는 두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 ‘작은 수레’는 모든 존재들이 하나고 평등하다는 것은 강조하지만 그 모든 존재들이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작은 수레’ 전통에서는 수행자들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수준이 아라한의 경지입니다. 둘째 ‘작은 수레’는 불성을 성취하거나 드러내는 방법으로서의 수단의 역동성과 변화에 초점을 두지 않습니다.
Q : I can understand the first difference. However, I need more explanation to grasp the meaning of a means. What exactly is a ’means’ ? 첫 번째 차이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단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좀더 설명이 필요합니다. 수단이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요?
A : Fundamentally, both traditions have the same goal to see the true reality of all things. Then, in order to reach the goal, the ‘Small Vehicle’ emphasizes the traditional way of means. On the other hand, the ‘Great Vehicle’ is more open and flexible to change. Also, it transforms its vehicle as a means for enlightenment depending on the situation. In this sense, in the ‘Great Vehicle’ tradition, there is the ‘eighty four thousand gates of teaching’ that are expedient means towards enlightenment. 근본적으로 두 전통은 모든 존재들의 진정한 실상을 깨닫고자 하는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 ‘작은 수레’는 전통적 방식의 수단을 강조합니다. 반면에 ‘큰 수레’는 상황에 따라서 보다 개방적이고 유동적입니다. 또한 ‘큰 수레’는 상황에 따라서 깨달음의 수단인 자신의 수레를 변형시킵니다. 그런 의미에서 ‘큰 수레’ 전통에는 깨달음을 향한 방편적 수단으로서 팔만사천 종류의 법문이 있습니다.
Q : Why does it need many means for enlightenment? 깨달음을 위해서 왜 그렇게 많은 방편이 필요한가요?
A : The number is not important in the word ‘eighty four thousand gates of teaching’. It is symbolically used to show that depending on situations, there are numerical and uncountable numbers of means to attain enlightenment. This is the reason why there are so many different names of buddhas and bodhisattvas who represent different characters in the Mahayana Buddhism. 팔만사천 종류의 법문에서 실제로 숫자가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상황에 따라서 셀 수 없을 만큼 무수한 방편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상징적으로 말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승불교에서는 서로 다른 특징을 드러내는 붓다와 보디사트바들의 수많은 이름들이 있는 것입니다.
Q : Then, what do you think of one insisting that her or his way of practice is the best or the only way for enlightenment? 그렇다면 만일 어떤 이가 자신의 수행법이 최고이며 깨달음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 I think it is good to have one’s own way of practice but to attach to it and have narrow mind or pride is ignorant. 자신에게 맞는 수행법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집착해서 좁은 마음을 갖거나 자만심을 갖는 것은 무지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Q : Nowadays, some people think Korean Buddhism needs to change to appeal to younger generations. How can this be explained relating to the word ‘skillful means’? 요즘 들어서 사람들은 한국불교가 젊은 세대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변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편적 기술이라는 말과 관련시켜서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A : Traditionally, it is understood that the point of the word ‘Great Vehicle’ is in the meaning of the word ‘great’. However, we need to pay attention to the meaning of the word ‘vehicle’ more than the meaning of the word ‘great’ when we think of a skillful means. For, a skillful means is nothing but a ‘vehicle’. As we know, a vehicle is not the thing to be fixed and unchanged. It should be created and used in various ways and forms depending on the ‘inner cause and outer condition’. For example, we can’t climb a mountain by ship, or we can’t across an ocean by bus. It is also true that to take a plane is more convenient than to take a car or vise versa. Likewise, younger generations are not interested in the vehicle that practitioners use for the enlightenment. Therefore, we have to offer special vehicles that attract younger generations in order to lead them into the world of enlightenment. In this sense, the meaning of the word ‘great’ can be interpreted as the meaning of offering all kinds of various vehicles according to time and condition.
전통적으로 ‘큰 수레’라는 말의 핵심은 ‘크다’는 말의 의미에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크다’는 말의 의미보다 ‘수레’라는 말의 의미에 더 많은 관심을 둘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방편적 기술이라는 말이 다름아닌 ‘수레’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수레는 고정된 불변의 것이 아닙니다. 수레는 인연에 따라서 다양한 방법과 모양으로 만들어지고 사용 되어져야 합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배를 타고 등산을 하거나 버스로 바다를 건널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차를 타는 것보다 비행기를 타는 것이 보다 편리한 때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젊은 세대들은 수행자들이 깨닫기 위해서 사용하는 수레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젊은 세대들을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특별한 수레를 제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크다’는 말의 의미는 시대와 조건에 따라서 일체의 모든 종류의 수레를 다양하게 제공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Q : If the ‘vehicle’ means the ‘skill means’, then can I say the ‘vehicle’ is also the ‘wisdom’? 수레가 방편적 수단을 의미한다면 수레가 지혜를 의미한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까?
A : Yes. The vehicle that transports younger generations should be changed and upgraded in accordance with the bent of younger generations. This is wisdom. 그렇습니다. 젊은 세대들을 수송하는 수레는 젊은 세대들의 취향에 맞추어서 변화되고 업그레이드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
.終.
첨부파일 참고 바랍니다.
심월 합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