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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佛者가 흔히 갖는 疑問.. What Is Practice? 수행(修行)이 무엇입니까?2023-11-07 19:32
작성자 Level 8
첨부파일FAQ on Buddhism불자가 흔히갖는 의문_ What is practice. 修行이란무엇인가요.pdf (191.4KB)

What Is Practice? (修行이란…)

 

Q : What is practice?

수행이 무엇입니까?
 

A : It is to cleanse mental and physical actions.
수행은 정신적 신체적으로 행하는 업_행위를 닦는 것입니다.

 

Q : Why do we have to cleanse mental and physical actions?

왜 정신적 신체적으로 행하는 업을 닦아야 하는가요?
 

A : It is because they cause all human sufferings.

왜냐하면 정신적 신체적으로 행하는 업이 인간의 모든 고통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Q : How can we cleanse such actions that cause sufferings?

고통을 일으키는 그런 행위들을 어떻게 닦습니까?
 

A : It is to cultivate wholesome deeds to grow and to dry out unwholesome deeds through mental and physical actions.

정신적 신체적으로 행하는 업들을 통해서 선한 행위는 성장하도록 배양시키고 악한 행위는 성장하지 못하도록 말려버리는 것입니다.

 

Q : What are wholesome deeds?

선한 행위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요?
 

A : They are mental and physical deeds that facilitate spiritual growth and happiness of self as well as others.

선한 행위란 자신과 타인들의 영적 성장과 행복을 동시에 촉진시키는 정신적 육체적 행위들을 말합니다.

 

Q : How can we develop them?

어떻게 선업을 발전시킬 수 있을까요?
 

A : We can develop them through state of mindfulness, being here and now, or seeing things as they are.
선업은 선정의 상태, 지금_여기에 머물거나 또는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봄으로써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Q : What are unwholesome deeds?

악한 행위란 무엇을 뜻하는지요?
 

A : They are mental and physical actions based on wrong concepts, such as prejudice and discrimination; they destroy or disturb spiritual growth and happiness of self as well as others.

악한 행위들은 편견이나 차별과 같은 그릇된 개념에 근거를 둔 정신적 신체적 행위를 말합니다. 그런 행위들은 자신과 동시에 타인들의 영적 성장과 행복을 파괴하거나 방해합니다.
 

Q : I learned all of us are originally buddhas. It means we are already enlightened and have Buddha-nature from the beginning. Nevertheless, how can we conduct unwholesome actions?

우리 모두는 원래부터 부처라고 배웠습니다. 그건 곧 우리가 이미 깨달아 있고 처음부터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악한 행위를 할 수가 있는지요?
 

A : Our original enlightenment or perfect wisdom has been contaminated by ignorance.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본래 깨달음 또는 완전한 지혜가 무지에 의해서 오염되었기 때문입니다.

 

Q : How and why was it contaminated by ignorance?

어떻게 왜 본래 깨달음 또는 완전한 지혜가 무지로 오염되었을까요?
 

A : It is because we are born with physical body that is a 「product of cause and condition」. At the same time, based on the body, mind will also appear. That is, our body which is the 「product of cause and condition」 has desires to maintain itself in its own way, hence, not following the 「cause and condition」. Such desires create ignorance.
그것은 우리가 「인연의 산물」인 신체적 몸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그 몸을 바탕으로 마음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즉, 「인연의 산물」로 생겨난 우리의 몸이 자신의 방식으로 몸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 탓에 「인연」을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욕망이 무지를 만들어 냅니다.

 

Q : Could you tell me when the original enlightenment or perfect wisdom was initially contaminated by ignorance?

언제 본래 깨달음 또는 완전한 지혜가 무지에 의해서 최초로 오염되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A : It was the moment when your mind moved for the first time, because, if mind occurs, ignorance always occurs too.
그것은 마음이 최초로 움직였던 순간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일어나면 무지 또한 반드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Q : Why does the mind occur?

마음은 왜 일어나는 건가요?
 

A : It occurs because our body does not follow the 「law of cause and condition」. Our body should follow the 「law of cause and condition」, for, it was originated by the 「law of cause and condition」.
왜냐하면 우리의 몸이 「인연법」을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몸은 「인연법」에 의해서 생겨났기 때문에 「인연법」을 따라야 합니다.

 

Q : What do you mean by following the 「law of cause and condition」?

「인연법」을 따른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요?
 

A : It means to practice the 「middle path and emptiness」.
그것은 「중도와 공」을 실천한다는 뜻입니다.

 

Q : It is hard to understand completely. I have heard the following phrase in the sutra. Suddenly it happened in the remote antiquity without knowing beginning time. Could you explain about this phrase a little bit more?

완전하게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경에서는 최초의 무지는 시작을 알 수 없는 아득한 옛날에 불현듯이 일어났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좀더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A : You might think the phrase, the remote antiquity without knowing beginning time, as the concept of past. However, it is not the matter of the tense of time that implies past, present, and future. It is the expression related to the depth of mind. In other words, the phrase, the remote antiquity, implies the bottom of mind or the deepest level of mind; it is not so much of the time concept as it is a place where it happened. The phrase, without knowing beginning time, means unconsciousness. That is, it happened without consciousness or awareness. The word, suddenly, emphasizes that it happened in a very short moment. Therefore, it happened unconsciously at the very moment in the bottom of the mind for the original enlightenment to be contaminated by ignorance; it is not easy to notice when and how the original enlightenment is contaminated by ignorance.

어쩌면 시작을 알 수 없는 아득한 옛날이라는 말을 과거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서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하는 시제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의 깊이와 관련된 표현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득한 옛날이라는 말은 마음의 밑바닥, 가장 깊은 수준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시간 개념이기보다는 오히려 마음이 일어나는 어떤 자리의 의미를 더 많이 담고 있습니다. 시작을 알 수 없다는 말은 무의식을 의미합니다. 즉 마음이 의식이나 자각 없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불현듯 이라는 말은 아주 짧은 찰나적 순간에 일어났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본래 깨달음이 무지에 의해서 오염되는 것이 마음의 맨 밑바닥에서 아주 짧은 찰나에 무의식적으로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언제 어떻게 본래 깨달음이 무지에 의해 오염되는지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Q : Then, the reason why we practice 「tranquility_shamatha and insight _vipashyana」 is to get rid of ignorance that is covering the original enlightenment and to see our Buddha-nature?

그러면, 「지_관법(止_觀法­; 사마타_위빠사나)」을 수행하는 이유가 원래 깨달음을 덮고 있는 무지를 제거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불성을 보기 위해서인가요?
 

A : Yes. Tranquility practice functions to not create ignorance by helping us to stop the movement of mind for, if mind moves, ignorance occurs, and if mind stops moving, ignorance also disappears. On the other hand, insight practice works to see and observe the occurrence and disappearance of the mind moment by moment. In that way, insight practice helps us to see things as they are.
그렇습니다. 마음을 멈추는 수행은 마음의 움직임을 멈춤으로써 무지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작용을 합니다. 마음이 움직이면 무지가 일어나고, 마음이 멈추면 무지도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한편, 마음을 통찰하는 수행은 순간순간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도록 하는 작용을 합니다. 그런 방식으로 통찰수행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Q : When do we practice tranquility or insight?

언제 마음을 멈추는 수행을 하고 언제 마음을 통찰하는 수행을 해야 하나요?
 

A : This has been one of the main issues among the Buddhist practitioners. From the Buddhist practitioners’ points of view, it is good to practice tranquility when the body takes a rest and to practice insight of the movement of mind when the body moves.

이것은 불교수행자들 사이에서 논의되어온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불교수행자들의 견해로 본다면 몸이 휴식하고 있을 때는 마음의 멈춤을 수행하고 몸이 움직일 때는 마음의 움직임을 통찰하는 수행이 바람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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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참고 바랍니다.

심월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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