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w Should Beginners Start The Study Of Buddhism
The First Time? (불교공부는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요?) ◈
Q : How should beginners start the study of Buddhism the first time?
불교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불교공부를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요?
A : I think you better understand what study of Buddhism exactly means first: Study of Buddhism is study of yourself. 제 생각에는 먼저 불교공부가 뭔지를 정확히 아는 것이 좋겠군요. 불교공부는 당신 자신에 관한 공부입니다.
Q : I thought study of Buddhism is to learn about Buddha or Buddha’s teachings. Isn’t it?
저는 불교공부가 부처님이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요. 그게 아닌가요?
A : You are right. When you enter into the Buddhist world, you will naturally learn about Buddha and Buddha’s teachings. However, it is very important to ask yourself the following questions while you are studying about Buddha and Buddha’s teachings. “Why am I studying this? What is the ultimate goal of studying all these things?” What can I do with these studies? If you forget to ask such questions to yourself, you may go to the wrong direction.
맞습니다. 불교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 자연스럽게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을 배우는 동안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왜 불교를 공부하는지, 그러한 것들을 배우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배운 것들을 통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 만일 당신 자신에게 그러한 질문을 하는 것을 잊어버리면 불교공부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Q : I can hardly understand what you are saying. Why do I have to ask these questions? Why can’t I just simply study?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왜 그러한 질문들을 해야만 하나요? 그냥 단순하게 공부하면 안 되나요?
A : I understand. However, it is not our goal to accumulate information and knowledge of Buddhism. We study Buddhism for the purpose of our spiritual growth and transformation from suffering to happiness.
이해합니다. 그러나 불교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쌓는 것이 우리들의 목적은 아닙니다. 불교공부는 단지 우리들의 정신적 성장과 고통을 행복으로 변형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Q : Do you mean the person who grows and transforms the most understands Buddhism?
그럼 가장 많이 성장하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불교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는 뜻입니까?
A : Yes. 그렇습니다.
Q: You said studying Buddhism is study of myself. Then, should I ask how I can study about myself instead of Buddhism?
불교를 공부하는 것이 나 자신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불교공부를 어떻게 해야 되느냐는 질문 대신에 나 자신에 관한 공부를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질문해야 됩니까?
A : I think asking how to study about oneself is more practical and effective in studying Buddhism.
제 생각에 자기공부를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 것이 불교공부를 보다 실질적이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여겨지는군요.
Q : How can I begin studying about myself through Buddhism?
불교를 통해서 나 자신에 대한 공부를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요?
A : I like to recommend two ways. One is to focus on the suffering or unhappiness. The other is to focus on pleasure or happiness. That is, you can learn about your own suffering or unhappiness through Buddha’s teaching. You can also learn about your own pleasure or happiness through Buddha’s teaching. 두 가지 방법을 추천해 드리고 싶군요. 하나는 고통과 불행에 대해 초점을 맞추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즐거움이나 행복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즉,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당신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이나 불행에 대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당신 자신의 즐거움이나 행복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습니다.
Q : I like to know why you are suggesting these two ways to study about myself.
왜 나 자신에 대해서 공부하는데 그러한 두 가지 방법을 제안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A : Sure. We all want happiness and pleasure. At the same time we do not want suffering and unhappiness. Then, we have to know first what happiness and pleasure are in order to obtain them. Likewise, we have to know first what suffering and unhappiness are in order to be free from them. 좋습니다. 우리는 모두 행복과 즐거움을 원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고통과 불행을 원치 않습니다. 그런데 행복과 즐거움을 얻으려면 우리는 먼저 행복과 불행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고통과 불행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고통과 불행이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Q : What kinds of Buddha’s teachings are there to teach me about my own suffering and unhappiness?
부처님의 어떤 가르침들을 통해서 나 자신의 고통과 불행에 대해서 배울 수 있습니까?
A : There are Four Noble Truths and Eightfold Paths. The Four Noble Truths teaches you what you are suffering or what makes you unhappy, why you are suffering or why you are unhappy, and how you can root out suffering and unhappiness. The Eightfold Paths teaches you the detailed methods to eradicate suffering and unhappiness. 사성제와 팔정도가 있습니다. 사성제는 당신이 고통스럽거나 불행해 하는 것이 무엇이고 이유가 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고통과 불행을 뿌리뽑을 수 있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팔정도는 고통과 불행을 뿌리뽑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가르쳐 줍니다.
Q : Isn’t there suffering without cause, too? I often feel pain without any reason.
원인이 없는 고통도 있지 않을까요? 저는 자주 아무런 이유 없이 괴로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A : There is no suffering without cause. For, if there is no cause, there is no effect. Therefore, you may not notice the cause of your suffering, but inevitably you have reason why you are suffering or unhappy. 원인이 없는 고통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원인이 없으면 그 결과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괴로움의 원인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는 있지만 당신이 괴로워하고 불행해 하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Q : What if I don’t want to think of what I am suffering or unhappy?
만일 내가 무엇이 괴롭고 불행한가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A : That is like a doctor who attempting to perform an operation without diagnosing the illness. 그것은 마치 의사가 무슨 병인지도 진단하지 않고 수술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Q : What kinds of Buddha’s teachings are there to teach me about my own happiness?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 나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A : There are so many teachings. One of them is the Six Perfections: practice of giving, precepts, forbearance, effort, meditation, and wisdom. 거기에는 많은 가르침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육바라밀이 있습니다: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바라밀입니다.
Q : It sounds difficult to practice. How can I possibly be happy through such difficult trainings? I feel I would be suffering more if I practice them.
수행하기가 힘들 것같이 들립니다. 제가 어떻게 그런 수행을 통해서 행복해질 수 있습니까? 저는 그런 힘든 수행을 하면 오히려 고통이 더 커질 것 같습니다.
A : Think about physical exercise. Undoubtedly, it is hard, but your body becomes strong after physical training. You will not be fragile physically by disease. If you train your mind, your mind also becomes strong. Therefore, you are not easily frustrated or suffer from the obstacles of life. 운동할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당연히 힘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신체훈련을 하면 당신의 몸이 보다 건강해져서 병에 약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마음을 훈련한다면 당신의 마음이 튼튼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삶의 장애들에 의해 쉽게 좌절하거나 고통 받지 않을 것입니다.
Q : How can I obtain happiness through practice of giving? Could you explain the meaning of practice of giving?
보시수행을 통해서 어떻게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까? 보시수행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A : The key to practice of giving is to foster and stimulate the growth of others. In fact, practice of giving is not unconditioned giving. It is a conditioned giving only for growth and positive change. You have to understand two divergent in practice of giving: growth and development and destruction and a backward step. 보시수행의 핵심은 다른 사람들의 성장을 돕고 자극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보시수행은 무조건적으로 주는 것이 아닙니다. 보시수행은 오직 성장과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서 조건적으로 주는 것입니다. 보시수행에는 성장과 발전, 그리고 파괴와 퇴보의 두 가지 방식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終.
첨부파일 참고 바랍니다.
심월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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